통증으로 남은 기억들, 동시에 아직 명료하게 말하지 못한 채 남아 있는 상흔 자국을 발견했다. 그 기억들을 꺼내야만 하는 순간이다. 말하지 못한 통증의 기억들을 꺼낼 수 있는 방식의 말과 글을 새로 익힌다. 자신의 내밀한 기억과 사회적 참사에 대한 자기연관적 경험을 반복적으로 마주한다. 통증 앞에서 징징대던 화자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터져나온 고름을 발견한다. 이만하면 되었다. 이제 징징거리기를 그만해도 되겠다.
시선은 점차 “고름”이 빠져나가고 남은 빈 자리로 옮겨간다. 빈 터에 머물며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깊은 바다와 침몰하는 배, 사회적 참사에 대한 기억이 빈 자리의 살점을 울린다. 침묵할 수밖에 없었고 괴성을 지를 수밖에 없었고 다시 침묵으로 혹은 다른 파장으로 옮겨 가기를 반복해왔다. 이제 다시 통증의 기억을 마주한다. 안산과 목포와 진도에 몸을 가닿는다. 장소에서 발생하는 파형이 몸의 빈 자리를 돌며 울린다.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고 파도가 친다. 어느덧 빛바랜 노란 꼬리들은 하염없이 흐드러지며 타닥타닥 피어오르고 하강하기를 반복한다. 기억의 장소를 따라 가다 길을 잃는다. 중소도시의 풍경, 숲과 항구, 기억의 터 곁에 머물며 초연하게 장소를 품은 장소의 소리들이 함께 공명한다.
서서히 빈 자리에 살점이 차오른다. 이는 이전의 상흔을 품으며 상승하는 “존재의 살점”인 동시에 다가올 하강의 시간을 가늠하는 관계적 살점이기도 하다.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경험하는 통증으로부터 ‘나’는 언제나 홀로가 아님을, 타자와의 접촉 속에서 끊임없이 해체되고 재구축되기를 반복한다. 통증의 생성과 소멸의 교차 속에서 나는 아주 조금이나마 비워지고 타자는 나에게 아주 조금이나마 가까운 ‘당신/너’가 된다. 관계적 통증의 기억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어느덧 돌아봄과 경청의 과정으로 이어진다.
나의 고통으로부터 너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이야기의 한가운데 혹은 “가장자리”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