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 로



감각의 상실과 재구성. 구멍난 자리에서 줄줄 새던 진물들이 쌓여 응고된다. 통로를 만든다.  하염없이 흐르고 소멸되던 것들이 관을 이루며 망을 형성한다. 흐름은 순환이 된다. 어디를 통과하고 있는지 망각한 채 길을 잃곤 했던 자리에서 마디가 자라난다. 갈림길이 생기고 여러 갈래의 길들이 펼쳐진다. 감각을 상실했다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한 채 쌓여왔던 상실의 기억들 가운데 몇몇 줄기들이 지면 위로 솟는다. 뾰족하고 거칠게.  모난 모양으로 이곳 저곳에 단서를 남긴다.  

나는 너는 당신은 그는 그녀는 그것은.  


막이 오르기  
직전 나는 나무의  
움직임을 맡는다 

소리에 맞춰 몸을  
움직여야 하는데  
꿈틀거리기만 할 뿐  
몸으로 꺼내어지지  
않는 동작들 



감각을 상실했다고 발화하는 시점은 감각상실을 감각할 수 있을 때서야 가능하다. 타자들의 피부와 맞닿는 접촉의 순간 상실을 마주한다. 당신과 맞댄 피부를 사이로 영원한 찰나의, 상실의 순간들이 벌어진다. 균열됨과 동시에 연결되는 끈적하고 촘촘한 점막들의 연속. 점막들은 상실과 연결의 틈을 끊임없이 메우고 벌린다. ‘나’와 ‘너’의 경계가 희미해진다. ‘나와 너’의 경계, 나와너의 경계, 나와너의경계. 경계가희미해진다. 희미해진 경계를 발판삼아 나는 너의 이야기에, 너의 고통에 어떻게 가닿게 될까? 너의 무엇을 더듬고 비워낸 나의 자리 혹은 너의 자리에 무엇이 자리할까? 





방향감각이 생긴다 좌표를 찍는다 
길을 나선다 길을 잃는다 

다시. 만지다. 몸을. 서로의 
몸을, 서로의 몸에 묻은 체취를
우리가 되는 건 그 자체로서 과정이자 
완성 동시에 미완성
움직이다. 몸을. 몸들을. 뒤얽히는 
몸짓들. 선율이 흐르고
우리는 그렇게 존재한다. 
무엇도 고정된 것은 없는 
상태의 기이하고도 기괴한 상태의 살성 

살들이 존재한다. 
피부가 닿는 곳에서는 마찰이 일어나고
미세하고 묵직한 굉음이 울려온다. 
그것은 통증일까? 
아픔일까? 아픔이자 희열이다.
 마주치는 순간의 폭발과 상처들 
터져 오르고 꺼져 내린다. 
울룩불룩한 진동들이 
이리저리 오고 간다. 지금의 상태 
앞으로의 상태
이전부터 계속되고  끊임없이 
계속될 관계의 모양


타자의 고통은 너무도 멀리에 있다. 붉은 빛의 이미지들 혹은 스펙타클이 난무하다. 타자를 대상화하며 ‘우리’의 안전을 재확인하고, 타자들의 아우성과 고통을 ‘우리’의 터를 공고히 하는 수단으로 삼는다.  

나는 어디로 향함으로써 다른 삶을 살아낼 수 있을까? 통증을 매개삼아 타자에게 다가가는 것은 가능할까? 통증이 남긴 공터를 어떤 차원으로 꾸려 나가야 할까? 누구의 고통이든 그것을 ‘물신화’하지 않고 그 자체로 마주하고 관계를 맺는 행위는 어디서부터 시작할 수 있을까? 구체적인 이야기들은 밖으로 새어 나오지 못한 채  입 안 곳곳의 골짜기로 숨는다. 질문과 듣기의 반복. 어떤 질문들을 가지고 길을 나설까? 당신의 구체적인 삶을 들여다보기 위해 나는 어떤 채비를 해야 할까?



당신의 고통에 다가간다. 
몸에서 몸으로. 몸을 기울인다.
당신이 나에게 몸으로 건네는 말들을 
몸으로 듣기 위해.
외면하지 않는다. 그리고 기억한다.

아주 조금씩 당신과의 거리를 좁혀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