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를 품은 장소
#1
새벽 일찍 일어나 밤비에게 미안함과 염려를 전하고서 목포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싣는다. 목포 숙소 사장님의 호의로 체크인 전, 숙소 내 공용공간에 자리를 잡고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공용공간의 고요함이 꽤나 생경하다. 내가 글을 끄적일 때 이런 소리가 나는구나. 어떻게 하면 잘 듣고 그것을 그 자체로 맞이하는 동시에 미련 없이 보낼 수 있을까? 자연의 일부로서 존재하면서도 존재에 연연하지 않는 상태. 애쓰지 않으면서 당신을 온전히 담고 홀연히 보낼 수 있는 상태에 가 닿고 싶다. 몸이 으레 있어야 할 곳에 마땅히 자리해 움직이다 어느 순간 훌훌 소멸하는 찰나와 억겁의 변주를 가늠한다. 동시에 그렇기에 잔존하는 강렬한 존재의 욕구를 경험한다. 끊임없이 내가 있는 이 곳을 확인하고, 이곳에 대해 어떤 말을 보태려 애를 쓴다. 더 적확하고 낯선 말들을 발견하고 싶다.
어쩌면 내게 일어난 그 일은, 이해였을지도 모른다. 사실이 되기 위해서 나는 계속해서 이해할 수 없는 채로 머물러야 하고, 계속해서 이해하면 안 되는 입장이어야만 한다. 갑작스레 벌어지는 모든 이해는 투철한 ‘이해하지 못함’과 매우 유사하다. 아니다. 갑작스럽게 벌어지는 모든 이해는 궁극적으로 투철한 ‘이해하지 못함'의 누설이다. 발견의 매순간은 자기상실이다.2
말하기, 그래서 말해진 것의 남루함이 불러 일으킬 엄청난 경악 속으로 나 자신을 밀어넣기. 그 말이 내 입 밖으로 나오자마자, 나는 서둘러 이렇게 덧붙여야만 할 것이다. 그런 뜻이 아니야, 그런 뜻이 아니야!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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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G.H.에 따른 수난(서울:봄날의책, 2020), 18.
3 위의 책, 23.
#2
세월호 목포신항만거치소로 향한다. 거치 장소 인근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걷는다. 인적이 드물다. 예상했던 장면과 겹치며 어긋나는 소리와 풍경을 접한다. 바람이 불고 주변에 시간의 흔적이 빛바램으로 드러난 노란 리본들이 있다. 노란 가닥들이 풍향과 풍속에 따라 흐드러지게 날린다. 거치를 반대하는 플랜 카드와 잊지 않다는 메세지들이 함께 즐비한 곳 사이에 노란 꼬리들의 흐드러지게 소리를 낸다. 바람 소리와 노란 잎새들의 소리 묵직한 바퀴들의 소리.
거대한 선체는 붉은 녹슨 면을 드러내며 고요하게 자리해 있다. 그 소리를 담고자 하는 마음과 담아도 될지 확신이 서지 않는 마음에 번뇌가 인다. 담아도 될 지 되뇌다가 녹음 버튼을 누른다. 노란 길을 따라 철망을 따라 천천히 거닌다. 잊지 않고자 발걸음을 멈췄던 이들의 자취를 따라간다. “기억이 합니다"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기억하겠습니다. 기억합니다.가 아닌 기억이 합니다. ‘기억이 한다'는 비문에 자리한 수행성이 나를 둥실 떠오르게 한다. 기억의 행위란 무엇일까? 회귀하기를 반복하며 구멍의 자리를 넓힌다. 그 자리는 확장하며 포섭한다. 윤리에 연연하지 않고 그저 존재함으로써 존재를 받아들인다. 진동의 자장을 담으며. 녹슨 쇠고리와 선체, 빛바랜 노란 지느러미와 바람.
선체를 뒤로 하고 가다가 내가 이곳으로부터, 이곳에 대한 기억으로부터 떠날 채비를 하고 있음을 울컥 들켰다. 참으로 가볍구나. 애도하는 마음이. 아파하는 마음이. 어깨에 진 짐을 훌훌 덜고 싶었구나. 그런 마음에 면목이 없어지며 다시 쿵. 내려 앉는다. 평생의 기억이어야지. 기억이 하는 건 평생에 걸친 돌고 도는 굴레의 진동으로 타자를 호명하는 것, 그럼으로써 ‘나’는 존재한다. 멀리 간 듯해도 돌아보면 나는 금세 다시 이 곳으로 돌아온다. 통증의 자리로, 애도와 기억의 자리로. 공회전하는 진동 사이에서 당신을 마주친다.
#3
삼학도. 삼학도의 나무와 새. 숲의 일렁임이 목포신항만의 노란 물결과 겹쳐 들린다. 거닐다가 멈추어 소리를 듣고 경험하는 시간들이 켜켜히 쌓인다. 오늘은 좀더 얇은 표피로 세계의 살을 더듬었다. 체내의 역동성과 알아서 그러하게 되는 자연의 감각. 스스로 그렇게 소통하면서. 보다 열린 몸. 수용적인 몸으로 자연과 합을 맞춰간다.